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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들롱 알랭드롱 사망 안락사 아닌 자연사 ‘세기의 미남’ '영원한 연인'

by JackyLucky 2024.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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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계를 대표하는 미남 배우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던 알랭 들롱이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난 8월 18일, 프랑스 매체 '리베라시옹'은 그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온하게 숨을 거뒀다고 전했습니다.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의 생애와 영화 역사에 남긴 발자취는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

알랭 들롱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

1935년 11월, 알랭 들롱은 파리 교외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겨우 4살이 되던 해에 부모님이 이혼하였고, 각각 재혼을 하면서 알랭은 어느 누구도 돌보지 않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다른 가정에 입양되어야 했습니다.

그의 양부모 중 양아버지는 교도관이었으며, 알랭은 교도소 옆 집에서 사형수들이 처형당할 때마다 울리는 총소리를 들으며 자랐다고 합니다. 이러한 환경은 그의 어린 마음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양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그는 다시 친어머니의 재혼 가정으로 돌아갔지만, 학교 생활 또한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톨릭 기숙학교에 다녔으나, 불량한 행실로 인해 무려 6번이나 퇴학당하면서 여러 학교를 전전했습니다. 이러한 격동적인 청소년기를 보낸 후, 17세에 프랑스 해군에 입대했습니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근무지 무단이탈 사건으로 인해 군교도소에 수감되었고, 결국 불명예 전역을 맞이했습니다.

배우로서의 첫걸음과 세계적인 명성

프랑스 해군에서 불명예스럽게 전역한 후, 알랭 들롱은 파리에서 여러 잡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그중 웨이터와 비서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고, 이 시절 그가 갱단과 관련이 있었다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여배우 브리지트 오버와의 만남으로 크게 바뀌게 됩니다.


그들은 친분을 쌓았고, 함께 칸 영화제를 방문했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미국 영화 제작자인 데이비드 셀즈닉과 인연을 맺게 되면서 배우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1957년, 영화 '여자가 다가올 때'(Quand la femme s'en mele)로 데뷔한 알랭 들롱은 이듬해 영화 '태양은 가득히'에서 톰 리플리 역을 맡아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됩니다. 이 작품에서 그의 수려한 외모는 전 세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세계에서 가장 잘생긴 남성'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1960년대 프랑스 영화의 황금기를 이끌며, 그와 함께 카트린 드뇌브, 장폴 벨몽도와 같은 배우들이 활약하게 됩니다.

수많은 작품과 명예로운 수상 경력

알랭 들롱은 단순히 잘생긴 얼굴로만 사랑받은 배우는 아니었습니다. 그의 차가운 눈빛과 깊이 있는 연기력은 누아르 영화에서 빛을 발했으며, '한밤의 암살자'(1967), '시실리안'(1969), '암흑가의 두 사람'(1970) 등 수많은 작품에서 프렌치 누아르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는 프랑스 영화의 전성기를 이끌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알랭 들롱의 연기 경력은 다양한 수상 경력으로도 빛났습니다. 1991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았고, 1995년에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명예 황금곰상을, 2019년에는 칸국제영화제에서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상들은 그의 연기 인생을 인정받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복잡했던 개인사와 가족 이야기

알랭 들롱의 개인사는 그의 영화 경력만큼이나 복잡했습니다. 그는 1958년, 동료 배우 로미 슈나이더와 결혼했으나 1963년에 이혼하게 됩니다. 이후 1964년, 나탈리 드롱과 재혼해 첫째 아들 앙토니 들롱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이 결혼도 1969년에 끝을 맺었습니다. 세 번째 결혼은 미레유 다르크와 함께였고, 이 또한 1983년에 이혼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1987년부터 2001년까지 로잘리 판 브레멘과 함께 생활했으며, 그들은 두 아이를 두었습니다. 이렇듯 알랭 들롱의 개인사는 다사다난했지만, 그는 항상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자녀들과의 관계는 그가 말년에 이르러 더욱 의미 깊은 것이 되었습니다.

말년과 안락사 논쟁

알랭 들롱의 인생은 말년에 접어들면서 더욱 깊이 있는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2019년, 그는 뇌졸중 수술을 받았고 이후 스위스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스위스는 안락사가 합법인 나라로, 알랭 들롱은 그곳에서 삶을 마무리할 준비를 했습니다.


2022년 3월, 그는 안락사를 결심했다고 밝혀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당시 그는 "나는 프랑스가 아닌 스위스에서 살고 있다. 필요할 때 주저하지 않고 안락사를 선택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안락사를 통해 생을 마감했는지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자연사로 추정된다고는 합니다.


알랭 들롱의 마지막, 그리고 영원한 기억

알랭 들롱의 별세 소식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그는 단순히 한 시대를 풍미한 배우가 아니라, 프랑스 영화의 상징이자 전설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의 외모는 물론 연기력과 작품들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 프랑스와 전 세계 영화 팬들에게 알랭 들롱은 여전히 가장 잘생긴 남성 배우로, 그리고 불멸의 아이콘으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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